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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새벽이 다 될 무렵 중국 윈난성 샹그릴라에 도착했다. 이전 여행지였던 리장보다 쌀쌀한 공기에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중국 배낭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난 시점이었다. 손을 호호 불며 숙소 문을 열자, 티베트족 여사장이 따뜻한 미소로 맞이했다.

"你辛苦了, 欢迎你！(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환영해요!)"










▲ 중국 윈난 샹그릴라 숙소 중국 윈난 샹그릴라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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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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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윈난 샹그릴라 숙소 중국 윈난 샹그릴라 숙소


ⓒ 송혜림




샹그릴라는 윈난성 티베트족 자치구에 위치한 고원 도시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도에 자리잡은 이kodex 레버리지 주식
곳은 4월에도 패딩을 껴입는 도시다. 숙소 천장에 매단 오색 빛의 타르쵸(불경이나 만트라가 적혀 있는 오색 천 깃발)부터 용을 발목에 꿰고 있는 여성 보살 그림까지, 눈에 닿는 모든 곳에 티베트 문화가 강하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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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윈난 샹그릴라 숙소 중국 윈난 샹그릴라 숙소


ⓒ 송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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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눈을 떴다. 샹그릴라, 여긴 모든 것이 시나브로다. 아침을 먹기 위해 거리를 돌았지만 문을 연 식당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중국에서 흔히 보이던 아침 노점상도 없었다. 주인 없는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조용히 지나갈 뿐, 소란은 없었다.

구시가지를 두어바퀴 돌았을까. 한 젊은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아침 식사 할 곳 찾으세요? 저도 못 찾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아침밥 찾기 여정'에 동참한 청년의 이름은 위천. 전력공사 직원인 그는 비즈니스 출장으로 샹그릴라에 왔다고 했다. 우리는 구시가지 끄트머리에 위치한 작은 식당을 간신히 찾아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미씨엔(쌀국수), 그리고 야크 우유 한 잔을 나눠 먹었다.
"샹그릴라는 독특하네요. 이전에 윈난성의 쿤밍과 다리, 리장도 다녀왔는데 그곳 주민들은 모두 새벽부터 삶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여기만 시간의 초침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요."
만두를 손으로 잡아 뜯으며 말하자 위천이 웃으며 답했다.

"샹그릴라는 바람이 부는 대로, 꽃이 피는 대로. 천천히 걷는 삶을 좋아해요. 오늘 하루만 지내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거예요."










▲ 중국 윈난 샹그릴라 라중국 윈난 샹그릴라


ⓒ 송혜림












▲ 중국 윈난 샹그릴라 중국 윈난 샹그릴라


ⓒ 송혜림




초원의 숨결, 나파해

진분홍 머리장식을 두른 소수민족 할머니들, 슬렁슬렁 거리를 지나가는 야크들, 그리고 화려한 티베트 불교 장식이 어우러진 소담한 건물들. 바람이 불 때마다 오색 천 깃발, 타르쵸가 펄럭이며 축복을 퍼뜨린다는 믿음까지, 눈길 닿는 모든 곳에 이곳만의 고요한 리듬이 흐르고 있었다.

'지상 낙원'을 뜻하는 도시명처럼, 샹그릴라는 마치 새하얀 꿈 속에 스며든 듯했다. 그러다 문득 귓가에 낯선 언어가 스칠 때, 이곳이 중국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났다.










▲ 중국 윈난 샹그릴라 나파해 중국 윈난 샹그릴라 나파해


ⓒ 송혜림




샹그릴라의 대표 관광지는 해발 3000미터 고원의 '나파해(纳帕海)'다. 호수지만 바다처럼 넓어 '해(海)'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파해는 계절마다 습지와 초원이 서로 다른 얼굴로 바뀐다. 4월의 봄에 이곳을 찾으면, 푸른 초원을 자유롭게 달리는 야크와 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손길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발굽 소리엔 맑은 자유가 서려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열일곱 소녀처럼 들뜬 마음으로 나파해를 뛰어다녔다. 고원지대의 부드러운 한기가 두 볼을 어루만졌고, 발끝에 스치는 풀잎마다 맑은 이슬이 튀어 올랐다.
서울살이 5년 차. 이렇게 넓은 자연을 철없이 나뒹굴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눈부신 야경도, 휘황찬란한 건축 양식도 필요 없었다. 높은 하늘과 낮은 초원 사이에서 흐르던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다정하게 흘러갔다.

광장에선 매일 춤이 시작된다










▲ 중국 윈난 샹그릴라의 전통 식당 표고버섯 요리와 야크 고기 샤브샤브


ⓒ 송혜림




해가 붉게 물들 무렵, 다시 구시가지에서 위천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한국인을 직접 만난 건 내가 처음이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였다. 우리는 구시가지 인근의 작은 식당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과 취업에 대한 고민은 한국의 청춘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꽤 잘 알고 있었다. 정치적 양극화, 높은 취업 장벽, 젠더와 세대 간 갈등. 부정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들 앞에서, 나는 머쓱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려던 찰나, 샹그릴라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시방제(十邦街) 광장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너머를 내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우리는 남은 야크 고기를 급히 입에 넣고 시방제로 달려나갔다.

막 식사를 마칠 무렵, 샹그릴라 구시가지 중심인 시방제(十邦街) 광장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식당 창문으로 내다보니 수 많은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남은 야크 고기를 입에 밀어 넣고 시방제로 뛰어나갔다.










▲ 중국 윈난 샹그릴라 광장춤 중국 윈난 샹그릴라 광장춤


ⓒ 송혜림




이곳 주민들은 매일 오후 7시가 되면 자연스럽게 광장에 모여든다. 그리고 밤 9시까지 한가운데에서 티베트족 전통춤을 춘다. 세대도 다양하다. 하얗게 센 머리로 유연한 몸놀림을 뽐내는 어르신, 티베트 전통 의상을 입고 리듬에 맞춰 장단을 맞추는 청년들까지.


"너도 해 봐, 내가 영상 찍어줄게!"










▲ 중국 윈난 샹그릴라 광장춤 중국 윈난 샹그릴라 광장춤을 추는 나, 흰색 가방을 맨 사람.


ⓒ 송혜림




위천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둥근 원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앞사람의 동작을 조심스레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춤은 단순했다.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모두가 같은 리듬을 나눴고,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이방인이냐 묻지 않았고, 그저 함께 하나의 원을 만들어 나갈 뿐이었다.
'함께'가 있는 삶
문득, 서울이 떠올랐다. 우리에게도 광장이 있다. 하지만 그 공간은 정치, 이념, 세대, 지역 간 갈등으로 갈라져 있었다. 대화는 곧 논쟁이 되었고, 침묵은 무시로 받아들여졌다. 광장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를 향한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졌고, 분노의 언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곳에선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느라 정작 손을 맞잡을 여유가 없다.
반면 이 소도시의 사람들은 하루를 춤으로 마무리한다. 축제처럼, 아무 조건 없이. 문명의 빛조차 닿지 않는 나파해에서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달리고, 숨 쉬고, 살아간다.
이들의 삶에는 '속도'가 없다. 오직 자연과 어우러져 시나브로 살아가는 '방향'만 있을 뿐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매일 아침 스케줄에 쫓기고, 효율이라는 틀에 삶을 억지로 맞춰 넣는다.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도 모른 채, 그저 서울의 시간에 발맞춰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광장이 이토록 부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는 언제부터 '함께 춤추는 삶'을 잃어버렸을까. 언젠가 우리도, 어떠한 이념도 갈등도 없이, 모두가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출 수 있을까. 어쩌면 허상일지 모르지만, 샹그릴라의 밤 그 춤 속에서 나는 감히 그 '이상'을 꿈꿔본다.










▲ 중국 윈난 샹그릴라 좐진통 중국 윈난 샹그릴라 좐진통


ⓒ 송혜림




밤이 깊어질 무렵, 위천과 함께 샹그릴라의 구이산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세 바퀴를 돌리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티베트 불교 전통이 깃든, 거대한 소원 바퀴 '좐진통(转经筒)'이 있다.
"올해 꼭 취업되게 해주세요.""우리 아들 장가 가게 해주세요.""매일 행복하게 해주세요."
중국인들이 좐진통을 돌리며 속삭이는 수많은 기도들 위에, 나도 조심스레 작은 바람 하나를 얹었다. 불안정한 미래 속에서 냉소만 남았던 서울의 나를 잠시 내려두고, 이 낯선 땅의 하늘 아래에서 이방인의 소원이 조용히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덧붙이는 글